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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브리의 여행기/일본

[3주간의 일본] 12화. 혼자 또 다녀온 키치죠지 이노카시라온시 공원 + JR 패스를 잃어버린 밤

by 브리초이스 2022. 8. 16.

 

숙취로 시작한 토요일 아침. 이미 제목에도 썼지만 JR패스를 잃어버린 어마어마한 충격의 날이다... 

 

 

 

이때까지는 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아부라소바를 신나게 먹었다. 가능하면 일본에 있는 동안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려고 했고, 아부라소바는 이날 처음 먹어봤다. 계란 반개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추가로 계란을 시켜버렸다.

 

 

예정대로라면 주말인 만큼 H가 내가 가고 싶은 곳에 함께 따라가주기로 되어있었는데,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피곤했던 것도 있고 주말까지 사람 많은 곳에 가고 싶어하지 않아서 결국 역 안까지 들어왔다가 본인은 집에가서 쉬기로 결정. 일부러 주말은 H랑 보내기로 해서 다른 도시 여행은 안 가기로 했었는데, 이렇게 토요일 하루를 혼자 보내게 하다니... 시작부터 좋지가 않군. 

 

 

 

 

 

 

 

전날 비가와서 제대로 보지 못한 키치죠지 이노카시라온시 공원에 오후 느지막히 혼자 돌아왔다. 이날도 역시 흐린대다 전날 비로 단풍잎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지만 이 흐린 분위기도 나름 운치있고 좋았다. 

 

 

 

 

 

 

 

날은 쌀쌀했지만 가족단위나 친구들끼리 주말을 보내러 온 사람들로 공원은 붐볐고, 오리배들도 저마다 손님을 태우느라 바빴다. 

 

 

 

 

 

 

 

 

공원이 커서 한참 돌아다녔는데 이렇게 위로 전철이 지나다니는 길도 있었다. 밤처럼 어둡지만 아직까지는 이른 저녁시간. 

 

 

 

 

 

 

 

 

공원과 맞닿은 동네에 있던 작은 파출소. 예전에 오다기리죠가 나오는 시효경찰이라는 일본 드라마를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갑자기 그 드라마가 생각났다. 

 

 

 

 

 

 

 

공원 한쪽에 있던 아이들이 만든 작품을 전시해 둔 곳. 이날은 그냥 귀엽다고 생각하고 봤는데,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나 어느날 문득 이 사진을 꺼내봤더니 책가방을 메고 제대로 걸어가는 사람이 한눈에 딱 들어왔다. 맘이 힘들 때라 그랬나, 어지럽고 정신없고 복잡한 세상에서 제대로 꼿꼿이 서서 내 중심을 잡고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 안 작은 갤러리

 

 

 

 

 

 

 

 

군고구마 트럭

 

 

 

 

 

 

 

불이 켜진 누군가의 집.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주택들이지만, 이노카시라온시 공원이 있는 이 동네 자체가 예술가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라 집값이 굉장하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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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코코아 같은 걸 팔던 공원 안 아주 작은 카페. 해가 지고도 계속 돌아다니다보니 추워서 여기서 코코아를 사마셨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손님이 꽤 많았다.

 

 

 

 

 

 

 

 

공원 내 또 다른 카페 겸 레스토랑

 

 

 

 

 

 

 

 

전날에도 건넜던 이 다리에 서서 달이랑 불빛이 비친 강가도 바라보고, 오늘 아침 H는 왜 나를 서운하게 했나도 생각해보고, 내가 이기적이었나?도 되돌아보고. 아무튼 혼자 사색에 빠지기 딱 좋았던 곳. 

 

 

 

 

 

 

 

내가 참 좋아하는 스팟. 이노카시라온시 공원에서 나올 때 보이는 이 풍경. 키 큰 나무들이 양쪽에 든든하게 서 있고 저 멀리 가게들에서는 밝은 빛이 나오는 모습이 뭔가 고요한 공원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고, 다시 빛이 있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을 준다.  

 

 

 

 

 

 

 

 

전철을 타기 위해 키치죠지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본 풍경. 이 좁은 도로 위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사이로 저 멀리 버스가 다가오는 중. 

 

 

 

 

 

 

예정대로라면 키치죠지를 다 보고 저녁에는 시모키타자와를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거였는데, 혼자 걸어다니며 피곤했는지 JR패스를 손에 쥔 채로 전철에서 잠깐 졸았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내려야 할 역 이름이 나오는 안내방송을 듣고 깜짝 놀라 깨서 내려보니 내 손에 있어야 할 JR패스가 없었다... 내가 잠든사이 누가 내 손에서 가져갔을리는 없고, 분명 졸면서 전철 안에 떨어트린 것 같은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나가와 역에서 JR패스로 그냥 통과하던 출구를 현금을 지불하고 나와야 했고, 역무원에게 내 이름이 적힌 JR패스를 잃어버렸다고 얘기해두긴 했지만 찾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손에 JR패스를 쥐고 전철에서 꾸벅꾸벅 졸았던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고, 아침에 나를 따라오지 않고 집에서 쉬겠다던 H도 왠지 괘씸해지면서 가만있는 H도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미 집에 도착하기 전부터 너무 속상해서 울기 시작했고, 집에 도착해서 H 얼굴을 보고는 애처럼 울음이 터졌다. H는 내가 혼자 울면서 들어와서 깜짝 놀랐지만, 보통 남자들처럼 무슨 일이냐고 묻거나 안아주는 대신 따뜻한 차를 만들어주고는 내 울음이 그칠 때까지 가만히 앞에 앉아있었는데 나는 그 차분함이 더 견딜 수 없었다. 역에서 JR패스를 잃어버렸다며 감정적으로 하소연하는 나에게 사무적으로 대하던 역무원의 차분함과 어딘가 닮아있었는데, 그런 역무원을 탓할 수 없었던 것처럼 가만 있는 H를 탓할 수도 없었다.

 

 

 

다만 그토록 가깝게 느껴졌던 일본인 남자친구 H에게서 그동안은 몰랐던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의 큰 거리감을 느꼈을 뿐. 나중에 이 일을 계기로 일본에서 아이들이 울면 부모나 학교 선생님들은 어떻게 대처를 하는지, 누군가 슬퍼할 때 일본인과 한국인이 대처하는 법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는 크게 놀랐다. 어떤게 옳고 어떤게 그르다가 아니라, 각자가 자라온 환경이 이토록 다르구나라는 걸 뼈져리게 깨달았다. 

 

 

 

 

 

 

 

 

* 이 글은 2017년 11월 - 12월 여행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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