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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브리의 여행기/일본

[5일간의 에노시마] 3화. 도쿄에서 옛 추억을 더듬다 2016.08

by 브리초이스 2022. 11. 2.

오전에 H가 도쿄에서 면접이 잡혀있었다. 신소쯔(대학을 막 졸업한 따끈따끈한 졸업생)가 아니라서 일을 구하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그래도 간간히 잡히는 면접을 열심히 보러다닐 때였다.


괜찮은 회사가 많은 동네였는데 오래전이라 이름은 까먹었고, 나는 H가 면접을 보는 동안 근처 카페에서 기다렸다. 상기된 얼굴로 면접을 마치고 나온 H는 좋은 회사이기도 하고, 동네도 마음에 들고 여기서 꼭 일하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나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연하라 내가 오래 전에 인생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이제 막 경험해나가는 H를 보는 기분이 묘했고, 내가 가지지 못하고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H는 다 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면접 후 일정은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다녀주겠다고 해서 7년 전에 내가 처음으로 일본에 와서 살았던 동네를 가보고 싶었다.

나의 첫 비행기, 나의 첫 자취, 나의 첫 일본, 나의 첫 해외.

이 동네에 내려서 딱 이 골목을 들어서는데 7년 전에 있었던 파친코와 미스도(미스터 도넛)가 아직도 그대로 있을 정도로 변함이 없어서 깜짝 놀랐다. 사진엔 없지만 역에서 가까운 서서먹는 야키토리 전문점도 그대로!!






길을 쭉 따라 내려와서 다리를 내려오면 있던 왼쪽 미술관도 그대로였는데, 내가 '여기 입구엔 항상 흑인 남자를 세워두더라구' 라고 했는데 7년이 지난 지금도 흑인 도어맨?이 있어서 진짜 충격이었다ㅎㅎㅎㅎ 정해진 대로 변화없이 쭉 이어가는 건 암튼 소름끼치게 잘하는 일본.









짜잔. 이 낡은 4층짜리 아파트가 바로 내가 3명의 룸메와 함께 같이 살았던 공간. 여기를 딱 보는 순간 그 시절의 내가 생각나서 좀 울컥했던 것 같기도. 2베드룸이 있는 아파트에 2층 침대를 룸메와 나눠쓰며 처음으로 집 떠나와 독립이란 걸 했던 때가 생각났다. 아직 밥을 할 줄도 몰랐던 때라 네이버로 '밥 하는 법'을 검색해서 처음으로 전기밥솥으로 혼자 밥을 해봤고, 지금처럼 스마트폰을 쓰기 전이라 역에 있는 공중전화에서 해외전화카드로 엄마아빠한테 전화하고는 눈물나는 거 겨우 참고 씩씩한 척 통화했던 그 때.








혼자 추억에 젖어있을 때 쯤, H가 근처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싶다고 해서 큰 마트 같은 곳에 왔다. 오전엔 면접보고 오후엔 편하게 돌아다니려고 미리 백팩에 옷이랑 운동화를 넣어왔기 때문.








도쿄엔 딱 3달만 살았는데 그 3달 동안 거의 매일 약속이 있었고, 약속도 없고 도서관도 안가는 정말 드문 날엔 집에서 조금 떨어진 이 길을 혼자 산책하며 이 동네에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오오쿠보 스테이션. 여기서 다같이 만나서 신오오쿠보에서 술 엄청 마시고 돌아다녔던 날들ㅎㅎㅎ 집에 가는 길은 그야말로 만취 상태였던 때가 많아서 늘 깔깔대며 행복하기만 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도쿄에서 어학연수를 시작하자마자 같은 클래스에 너무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우린 정말 가족과 다름없이 지냈다.







저녁은 H가 먹고 싶다는 빗쿠리스테이크였나? 일본에서 먹는 스테이크 위에 이렇게 튀긴 마늘 슬라이스 올려주는 거 너무 좋다. 둘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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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역 근처 어딘가에 있던 2층짜리 허름한 야키토리집에 가서 홉삐라는 것도 처음 마셔봤다. 일본에서 매일같이 지옥철 타고다니며 열심히 일하고 사는 건 힘들지 몰라도, 퇴근 길에 H를 만나서 함께 이런 허름한 이자카야에서 맥주 한잔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삶도 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일이 지치고 힘들어도 퇴근길에 마주하는 맥주랑 H만 있으면 하루 피로가 다 사라질 것 같다는 그런 생각.







5일째인 다음날.
취준생인 H가 에노시마에서 함께 공항까지 와주었다. 전혀 일도 하지 않고 구직활동만 하고있던터라 돈 쓰는 것도 신경이 쓰였을텐데도 별말없이 잘 따라다녀주고 외식도 함께 많이 해줘서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마지막 날 공항에서 먹은 디저트. 이걸 먹을 때만 해도 '나 하나도 안 슬픈데? 5일동안 너무 잘 놀다가서 그런지 진짜 안슬퍼 나!'라며 웃으며 대화를 나눴는데 막상 헤어질 시간이 되어서는 제대로 실감이 났는지 또 폭풍 눈물이 났다 ㅠㅠ 반년 만에 본 건데 지금 헤어지면 또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남자친구를 두고 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는거다. 그것도 일본-한국 롱디도 아니고, 일본 - 캐나다 장거리 연애이다보니.... 결국 훌쩍훌쩍 울며 체크인을 하고 마지막까지 울며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줘야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가서 주말만 보내고는 바로 짐을 싸서 캐나다로 돌아왔다.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딱 2주간의 휴가라니... 그만큼 절실하게 한국과 일본이 가고 싶어서였겠지... 잊고 있던 감정이었는데 여행기를 쓰며 당시 힘들었던 컬리지 생활과 마냥 애틋했던 장거리 연애 시절이 생각났다. 그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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